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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 심곡서원, 조광조의 개혁을 생각한다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심곡서원은 조선 중종 때 개혁의 아이콘이라 불리던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1482~1519)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위패를 모신 곳이다. 

조광조가 개혁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것을 불쌍히 여겨 효종이 ‘심곡(深谷)’이라는 사액현판과 토지와 노비를 내려 사액서원이 되었다. 

심곡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도 무사했던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로 지방 후학을 양성하고 선현에게 제례를 올리는 역할을 해왔다. 

서원의 여러 행사와 회의와 학문을 토론하던 장소인 강당

조광조가 추진했던 개혁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노비법과 서얼법 철폐이다. 노비들도 양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서얼법을 고쳐 서자ㆍ얼자들도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생 기숙사로 사용했던 유의재와 거인재. 강당 좌우측에 있다. 

당시 상황으로 볼 때 엄청난 일이었고, 당연히 이를 반대하는 훈구파 세력들의 저항에 부딪히게 됐다. 역모를 꾀한다는 모함을 받게된 조광조는 기묘사화로 귀양살이와 함께 사약을 내려받았다. 

심곡서원 입구의 홍살문과 외삼문, 강당, 내삼문 사우(사당)이 거의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강당은 서원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행사를 치르고 유림들이 모여 회의와 학문을 토론하던 장소이다. 강당 안에는 숙종의 어제어필이 담긴 현판과 서원의 규당 등이 걸려 있다. 

심곡서원의 역사를 함께한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와 400년의 느티나무.

심곡서원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호에서 2015년 국가 사적 제530호로 지정되었다. 

아파트 숲으로 둘러싸인 곳에 자리한 심곡서원은 도심 속 사적지로 학생들이 역사공부도 할 겸 가볼만한 곳으로 아이들과 함께 조광조의 개혁정책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뜻깊은 여행지다.

용인뉴스편집국  temp@te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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