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스 미공급 지역 주민들이 용인지역 도시가스 사업권자인 삼천리 도시가스의 사업권 고수에 반발, 마을이장의 1인 삭발시위로 사업권 포기 각서를 받아내는 등 도시가스 공급을 위한 적극 행동에 나섰다.

지난달 21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삼천리 도시가스 본사 앞에는 머리를 하얗게 민 한 남자가 주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영하의 추운 날씨 속에 1인 삭발시위를 벌이며 시민들과 삼천리 관계자들에게 호소한 그의 붉은 현수막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있었다.

“삼천리 도시가스는 용인시 모현면 왕산5리 가스공급 사업권을 포기하라! … 사업권을 볼모로 국민에게 피해주는 삼천리 도시가스는 누구를 위한 기업인가?”

삼천리 도시가스의 횡포에 1인시위로 맞선 그는 처인구 모현면 이장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왕산5리 이규상 이장이다.

이규상 이장은 이날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삼천리 도시가스 본사 앞에서 ‘삼천리 도시가스의 사업권 포기’와 ‘사장 및 삼천리 남부 본부장의 사과’를 요구하며 1인 삭발시위를 감행했다.

그 결과 삼천리 도시가스 남부지역 본부장으로부터 해당지역 사업권 포기각서를 받아내는데 성공, 왕산5리 지역 도시가스 공급을 위한 첫 단추를 끼우게 됐다.

# 모현 왕산리 중 유일한 도시가스 미공급 지역

165가구 500여 주민들이 살고 있는 모현면 왕산5리(독산 마을)는 지리적으로 용인시 북쪽 끝에 위치해 광주시 오포읍 매산리와 경계에 있는 지역으로 8개리가 있는 모현면 왕산리 중 유일하게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고 있는 곳이다.

왕산5리가 도시가스와 인연이 닿지 않았던 이유는 160여가구라는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수 때문이다. 용인시 도시가스 공급업체인 삼천리 측에서 보면 경제적 이익에 부합되지 않기에 쉽게 사업을 벌이기 힘든 것. 기름으로 난방을 해결하던 주민들은 해마다 치솟고 있는 기름 값으로 경제적 부담과 불편을 겪고 있다.

마을 주민 정춘기(59)씨는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주민들에게 천정부지로 오르는 기름값으로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면서 “대다수 주민들이 밤에만 보일러를 작동시키며 겨울만 되면 힘겹게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왕산5리 이규상 이장과 주민들은 지난 2006년 6월부터 공급관 설치를 요구하며 삼천리 도시가스와 용인시에 건의하는 등 도시가스 공급방법을 모색했지만 계속 불가통보를 받았다.

주민들이 본격적으로 다시 나서게 된 것은 올해 1월부터다. 해마다 치솟는 기름 값에 불만이 극에 달한 주민들은 삼천리의 사업권 포기를 거듭 요구하는 동시에 광주시 도시가스 사업권자인 대한 도시가스 측과 접촉, 광주에서 연결하는 것으로 긍적적 답변을 받아냈다.

왕산5리 주민들이 광주시 공급업체에 공급관 설치 제안을 하게 된 것은 약 1.1km 거리로 인접한 왕산2리(모산 마을)보다 작은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는 광주 매산리와 더욱 가깝기 때문.

공급관 공사비 역시 삼천리 도시가스가 시공하는 것 보다 대한 도시가스가 시공할 경우 비용이 두 배 정도 적게 들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삼천리 측은 시공비 9억 3천만원 정도를 산출했지만 대한 도시가스의 경우 4~5억의 비용이 들 것으로 보고 있다.

# 삼천리의 사업포기와 市 보조금 지원에 희망

이규상 이장은 “삼천리 남부지사에서 시공비를 뽑아보니 9억이 넘어가는 비용을 얘기하는데, 이 또한 가구수가 적어 시공비 전체를 주민들이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며 “한 가구당 수 백 만원을 들여 도시가수를 시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호소했다.

이 이장은 이어 “왕산5리는 대로로 광주시와 약 90여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보다 적은 비용으로 시공할 수 있다”면서 “사업권을 볼모로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대기업의 횡포는 아무리 이윤을 우선하는 기업이지만 기업윤리와 도덕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도시가스는 수도, 전기와 더불어 실생활에 필수적인 공공서비스지만 도시가스 사업자들의 지역 독점과 함께 안정적 이윤을 보장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공익적인 성격을 상실한 채 소비자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규상 이장과 왕산5리 주민들의 거듭된 노력 끝에 용인시 독점 사업권자인 삼천리 도시가스의 사업권 포기각서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또한 용인시가 2010년부터 도시가스 공급관 설치 보조금을 지원하게 되면서 도시가스 공급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

이규상 이장은 “지난 3년간 투쟁 끝에 삼천리 가스의 횡포에 맞서 사업권 포기라는 성과를 따냈다”면서도 “앞으로 타 업체와의 가스공급 계약 문제와 주민 분담금을 최소화하기 위한 용인시의 설치비용 지원이 과제로 남았다”고 밝혔다.

 

기자수첩 / 도시가스 양극화와 삼천리 거침없는 유가상승에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는 지역 주민들의 시름은 날로 깊어만 간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비싼 등유, LPG 등으로 취사와 난방을 해결하고 있는 서민들에게 도시가스 공급은 조금이나마 삶의 활력소를 찾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용인시에 따르면 2009년 용인시 전체 도시가스 공급률은 75.8%인 것으로 나타났다. 60%대인 경기도 평균에 비하면 비교적 높은 수치일지는 모르겠지만 지역에 따른 양극화가 심하다. 처인구는 80%를 넘는 기흥․수지에 비해 현저히 낮은 50%대의 공급률을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아직도 많은 지역이 도시가스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처인구의 넓은 면적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낮은 수치임은 틀림없다. 문제는 앞서 다룬 왕산5리 사례처럼 처인구의 경우 주택 밀집도가 떨어지는 읍·면 지역과 일부 동지역은 공급업체의 수익성 등을 이유로 도시가스 설치가 어렵다는 데 있다. 그나마 지난해 12월 용인시의회가 통과시킨 도시가스 공급관 설치 보조금 지원 조례로 미공급 지역 주민들을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됐지만, 용인지역을 독과점하고 있는 삼천리 도시가스의 경영 마인드가 바뀌기 전 까진 주민들이 실질적 혜택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08년 기준 매출 2조900억원을 기록하며 대기업으로 자리 잡고 있는 삼천리는 국내 도시가스 시장에서 18%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삼천리에서 도시가스 사업 매출 비중은 99.98%에 달할 정도로 도시가스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대부분의 경제인들은 향후 10년간 도시가스사업이 세대수 증가와 함께 보급률의 확대로 꾸준히 성장할 것이 보고 있다. 때문에, 도시가스 공급률이 점차 늘어나면서 수익성 강화로 삼천리의 매출액 증가도 불 보듯 뻔한 일로 보여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삼천리에겐 한 가지 과제이자 의무가 있다. 현재의 독과점 체제를 유지하며 사업 영역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사회환원 사업을 슬슬 시작해야 마땅하다. 그저 성금기탁과 봉사활동으로 사진 한 장 찍는 것 보다 도시가스 혜택을 받지 못하는 낙후지역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어느 때 보다 필요한 때이다.

 

박재영 기자  ultrasor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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