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학생들이 국회 진상조사단이 방문한 본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 사람 살리려고 양지주민 다 죽인다”
“국회의원 아저씨 무서운 철탑 없애주세요”

양지면 시가지 곳곳에 달려 있는 현수막 내용이다. 19일 국회 지경위 진상조사단의 방문에 맞춰 조사단이 지나가는 길목마다 주민들의 뜻을 모아 현수막을 걸어 놨다.

현수막의 글귀는 총신대와 가까워질수록 더욱 과격해진다. 학교 존폐여부가 걸린 사안인 만큼 학교 내 분위기는 전시를 방불케 한다. 교수와 학생, 학교를 수호하기 위해 모인 이들이 하나가 돼 본관 2층을 향해 목소리를 외친다.

19일 오후 1시 30분 양지면 제일리 총신대 본관 2층 강의실. 정훈택 총장대행을 비롯한 총신대 관계자와 양지면 주민, 언론사 취재진 등 1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회 진상조사단, 한국전력 김문덕 부사장이 참석해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이날 자유선진당 김용구 의원을 단장으로 한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송전탑 진상조사단’은 현장조사를 위해 총신대를 가장 먼저 방문했다. 송전선로 문제를 민주당 우제창 국회의원이 정치권으로 확대한 이후 진상조사단이 구성되고 첫 현장 방문이라 취재진의 관심도 높았다.

이 자리에서 총신대 측은 “특혜의혹과 주민의견 수렴을 무시하는 등 송전선로 선정과 변경 과정에서 부당성과 불법성이 많다”며 “학교의 존립여부가 걸린 중대한 사안인 만큼 노선변경이 이뤄질 때 까지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 지난 19일 총신대 본관 2층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민주당 우제창 국회의원과 국회 진상조사단 의원들이 총신대 측의 입장을 듣고 있다.

총신대“한전의 송전선로 사업은 명백한 불법”

한국전력공사는 2005년 8월 22일 신안성~신가평 80㎞ 구간에 송전선로를 건설하는 사업 승인을 받았다. 이 사업은 수도권 일대 전력공급 설비를 확충하기 위해 765㎸의 고압 전류가 흐르는 송전탑 155개를 세우는 것이다.

그런데 당초 설계안은 39번~42번 송전탑이 천신일 회장 등이 공동으로 소유한 땅을 가로지르는 것으로 돼 있지만 2007년 6월 11일 갑자기 송전탑 1기(41-1번)를 추가 건설하면서 송전탑 위치도 함께 변경된다. 4개의 송전탑이 원래 위치에서 약 200m 남쪽으로 바뀌게 되면서 총신대와 양지리 마을 인근과 가까워졌다.

총신대 측은 이 두 과정에서 불법성을 제기한다. 2005년 8월 사업승인 전 송전선로 선정 과정과 2007년 6월 송전탑 위치 변경 과정에서 학교로부터 서명 또는 날인을 받아야 했지만 그 어떤 통보조차 없었다는 것.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제14조에는 ‘사업시행자는 사업인정 전 토지소유자 및 관계인의 서명 또는 날인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 총신대 본관에서 바라 본 송전탑.

“어느 날 마징가Z가 동네에 와 있었다”

“도시생활을 접고 양지로 이사왔는데 아이들이 어느 날 마징가Z가 동네에 왔다고 했다. 마징가Z는 나쁜 사람 물리치러 오는 로봇으로 알고 있는데, 아이들에게 뭐라 말해야 될지 당황스러웠다.”

19일 국회 진상조사단의 양지면사무소 주민 간담회에서 양지면 주민대표 이복희씨가 한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마징가Z 모습을 하고 있는 철탑이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놀란 건 어른도 마찬가지다.

양지면철탑반대위원회 양대석 회장은 “양지에서 태어나 자라고 했는데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철탑이 세워져 있어 이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14개 양지리 대표 길준옥 이장은 “노선변경 시 주민설명회도 없이 진행한 것은 용납 안 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관련법은 어떨까. 전원개발촉진법 제5조의 2(주민 등의 의견청취)의 1항에 따르면 전원개발사업자는 실시계획의 승인 또는 변경승인 신청 전에 주민 및 관계 전문가 등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 19일 송전탑 현장조사를 마친 조사단이 양지면사무소로 향하고 있다.

새벽에 울린 싸이렌 … 기습공사와 물리적 충돌

지난 6월 2일 새벽. 총신대 기숙사에 난데없이 싸이렌이 울렸다. 공기에 쫓긴 대우건설(시공사)이 송전탑 공사를 기습 강행한 것. 이 과정에서 학생 8백여명이 공사를 저지하기 위해 한전 측 용역업체 직원들과 충돌하면서 학생 7명이 입원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총신대송전탑대책위원회 문병호 교수는 “크레인 2대와 용역업체 직원 100여명이 동원된 가운데 학생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며 “학생이 넘어지면 짓밟고 쇠파이프를 던지고 크레인에 매달린 학생이 추락하는 등 정도가 지나쳤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전과 대우건설 측은 “30일까지는 무조건 공사를 해야 하는 입장이라 경호업체 직원을 50명 동원했다”며 “공사방해금지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진 상황에서 총신대 쪽이 불법적으로 공사를 방해하고 싸움을 끌어들였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현재 총신대 신학대학원 학생과 교직원 10여명은 42번 철탑 아래 천막을 치고 24시간 감시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서울 성현교회 백운형(68) 목사도 지난 5일부터 송전탑 건설에 항의 차원으로 단식기도로 맞서고 있다.

▲ 양지면사무소 2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회 진상조사단  주민간담회에 많은 주민과 관계자들이 참석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국회 진상조사단, 양지의 희망 찾아줄까?

지난 19일 국회 진상조사단이 양지를 다녀간 이후 주민들은 희망에 부푼 분위기다. 천신일 회장 특혜의혹과 총신대 집단 투쟁에 이어 국회 조사단까지 가세한 양지면 송전선로 사태. 양지면 주민들은 원삼이 한전을 상대로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에 진상조사단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박재영 기자  ultrasor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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