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사건을 계기로 흉악범의 얼굴 공개를 놓고 논쟁이 뜨겁다. 연쇄살인사건 피의자 강호순의 얼굴이 일부 언론에 공개됐다. 이례적인 일이다. 반인륜적 범죄자의 모습에 호기심을 갖던 대다수 국민은 갈증을 풀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사진을 보고 놀랐다. 호감을 주는 반듯한 인상. 내심은 악마와 같은 그가 친절한 인상의 용모를 미끼삼아 희생자들을 낚았을 걸 생각하니 소름끼칠 일이라고 혀를 차기도 했다.

경찰은 당초 강호순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다. 경찰이 2005년 마련한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제85조(초상권 침해 금지)에 규정이 포함됐다.

한편 이를 계기로 형 확정 이전의 피의자 얼굴 공개가 적정한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됐다. 얼굴 공개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선지, 호기심 충족용인지, 범죄예방에 효과가 있는지, 피의자 가족의 피해는 어떤지 등 다양한 논란거리를 제공했다.

이 규칙은 경찰관은 경찰관서 안에서 피의자, 피해자 등 사건관계인의 신원을 추정할 수 있거나 신분이 노출될 우려가 있는 장면이 촬영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헌법상의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형사 절차상 확정판결 전까지는 초상권이 보호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백의 내용대로 사체 현장들이 정확히 드러나는 등 명백한 증거가 있는 반사회적 흉악범에게까지 이 원칙을 고수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만만찮다.

반사회적 흉악범의 경우 초상권보다는 공공의 알권리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초상권과 알권리라는 헌법상 법익이 충돌하지만 이익 형량의 원칙상 흉악범죄에 대해서는 알권리가 우선한다는 논거다. 이는 국민의 지대한 관심을 끈 극악한 범죄자는 범죄의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경우 수사 단계에서도 실명과 사진이 공개될 수 있다는 독일의 판례와 학설을 근거로 한다.

미국은 살해·아동 성범죄 등 중범죄 용의자의 경우 바로 사진과 함께 신상을 공개하고, 일본도 다수의 행인에 대해 무차별 살인을 한 피의자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했다.

범죄 예방의 가능성과 얼굴 공개를 통한 여죄 추궁도 가능하다는 점도 제시된다. 실제로 강호순의 얼굴 공개 후 그에게 감금됐다 풀려난 한 여성의 범죄피해 사례도 접수됐다.

지난달 말 2개 일간지에 이어 이달 들어 여러 신문과 3개 방송이 잇따라 강호순의 사진을 공개한 것도 국민의 알권리와 범죄예방 등 공익성을 명분 삼은 것이다.

신원 공개를 통한 사회적 응징을 요구하는 여론 등을 고려해 얼굴사진을 공개했다고 밝힌 곳도 있다. 일부 언론은 인터넷 여론조사 결과와 사설 등으로 얼굴 공개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얼굴 공개 여론이 일자 경찰은 연쇄살인범과 유아 성폭행범 등의 얼굴을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인권위도 5일 흉악범 얼굴 공개에 대해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는 공론의 장을 마련해 인권위가 할 일이 무엇인지 찾아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경찰과 인권위가 여론을 의식해 흉악한 연쇄살인범의 경우는 달리 취급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런 논의 자체가 반인권적이고 위헌적인 무모한 대책이라고 경계한다. 어쨌건 찬반 논의가 제기된 마당에 머뭇거릴 필요는 없다. 이참에 국민의 알권리와 피의자 인권보호라는 두 원칙의 충돌을 어떻게 조화롭게 해결할까에 대한 공론의 장을 열어야 한다.

전국지역신문협회 / 박경국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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