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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에 대하여(2)

2. 유방암의 운명과 치료의 역사


   
기원전의 기록에서도 유방암에 대한 서술이 있다. 그때부터 19세기 까지는 유방암에 대한 인식이, 본능적으로, 사회적으로 부정적이었다. 즉 여자로서의 기능상실, 장애에 대한 공포와 수치심은 유방 질환을 노출시키기를 꺼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체계적인 진단과 치료가 확립되기 힘들었고 환자들의 사망률은 높았다. 그 시절 유방암의 실태를 엿 볼 수 있는 문헌의 대부분은 수도원의 기록인데 이러한 기록을 통하여 유방암의 운명(그냥 방치 하였을 때의 경과) 와 그 당시의 치료 형태를 알 수 있다.

몇몇 귀족의 환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환자는 수도원이나 도시에서 운영하는 수용소에서 격리되어 생활하였다. 수용위주의 치료는 혜택도 있었지만 폐해도 많았다. 양성 질환자가 함께 수용되기도 하였고 죄인 취급을 당하기도 하였다. 치료방법은 주로 절단을 시행하였는데, 칼을 사용하기도 하였고 불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치료효과는 미미하고, 치료 술은 잔인하여 암으로 생각되는 경우 치료 없이 방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수용소도 있었다. 이러한 수용소 문헌에서 유방암의 운명을 알 수 있는데, 처음 작은 멍우리에서 시작하여, 크기가 증가하고 게 껍질처럼 울퉁불퉁 단단해지고, 유두가 당겨져 함몰되고, 유방 피부가 부으며 통증이 시작되고, 흉근 밑으로 임파절이 부으며 단단해지고 나중에는 유방피부에 궤양이 생기고, 혈관이 노출되며 분비물과 출혈이 생긴다. 이를 통한 세균 감염과 출혈로 환자는 사망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경과는 현대 의학 도입 후 보기 힘든 것이다.

19세기 중반이후 현대의학 도입(마취, 소독법의 발전)으로 치료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다양한 치료결과를 보이게 되었고, 치료율을 높이려는 노력으로 광범위 절제술이 경쟁적으로 도입 되었고 그 결과 생존율이 좋아 졌으나 수술 사망 율과 수술 합병증도 함께 증가 하였다. 20세기에는 진단과 치료 술이 더욱 발전하였는데 현미경을 이용한 병리학의 발전이 기여 하였다. 1970년대에는 유방 X-선 촬영 술이 보급되었고, 1980년 말에는 초음파 검사가 유방에서 적극적으로 시행되었다.

이로서 조기 진단의 길이 활짝 열렸다. 치료술 또한 각종 항암제, 항호르몬제의 개발과 방사선치료술의 개선으로 더욱 발전 하였다. 그래서 최근의 유방암 치료의 전형은, 조기 진단된 환자에 대해 적은 절제술을 시행하여, 유방을 보존하며, 발전된 병리학을 이용하여 각 환자의 암세포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에 따라, 환자 개개인의 치료를 맞춤으로 하게 되었고, 그 결과도 획기적으로 낙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상식을 갖춤으로서 독자들은 유방암 발생빈도가 늘어난다 하더라도 유방암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길 바라며, 체계적인 조기진단과 발전된 치료술을 믿기를 바란다.

다보스병원 일반외과 전문의   (의학박사) 
T : 323-2000

이상래  yonginnew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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