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정류리국(東邦淨溜璃國)의 교주이며, 연명식재(延命息災)의 의왕불이라고 하는 약사여래 입상이 있는 마을, 사람들은 이것을 미륵불이라고 불렀다.

 불상이 있던 곳에 마을이 있었는지, 마을이 있은 후에 불상이 생겼는지, 지금 우리들이 그것을 모르듯이 또 하나 잊혀져 가고 있는 이야기가 있으므로 나는 그것을 적고자 하는 것이다.

 옛날...
  이 미륵들의 넓은 들녘은 좌찬현에서 흐르는 냇물로서 관계용수를 삼았다.
  그런데 윗 고에서 물길을 막아 놓으면, 아랫마을 미륵 뜰에서는 보리때부터 흉년을 겪어야 했다. 때문에 미륵들 사람들은 윗동리 사람들과 친선을 도모코자 하였고, 그래서 명절 때면 윗마을 사람들을 초청하여 술자리를 함께 하기도 하였다.
  이 해에도 미륵 뜰의 김좌수 댁에서는 정월 대보름을 맞아 한 상 차려놓고 윗동리의 좌수, 감역, 소임 등을 초치하여 주연을 베풀었다.
  [ 최좌수, 갑자년 하면 이를 초년이라 하였으니, 이 해에는 운수 대통하시고 강령하시구려, 차린 것은 변변치 못하지만 기왕 오셨으니 푹 드시고 취흥이나 돋웁시다.]
  [ 이르다마다요, 오늘이 보름 명절이 아니겠소. 정월도 거의 다 간 셈이고, 이제 입춘지제 아니겠소, 금년에는 마을 모두 양석 농사하셔야
지요.]
  [ 암요, 이제 농사 일 서두를 때가 되었소이다. 다만 좌찬현 제언 물고지기의 선심 여하에 따라서 양석도 나고 삼배출도 날 수 있는 게 우리 마을의 사정이 아니겠소.]
  [ 설마 그렇기야 하겠습니까만, 수자원이 푼푼해야 선심도 쓸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 쓰고 남는 것으로 선심을 낸대서야 말이 아니지요, 부족한 것을 나눠주는 의리와 정성, 이것이 크면 클수록 받는 사람도 이를 더 지중하게 여기는 것 아니겠소. 이제까지 잘 해 주셨으니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 수밖에요.]
  [ 그렇게 합시다. 이 동네 풍년이 들어야 절량기에 대곡이 수월 할 테니 헛헛헛....]
  한 순배 잔이 오간 후, 취기가 돌 무렵 두레꾼들의 풍장 치는 소리가 가까워 졌다.
  [ 거 두레 장단 좋습니다. 웬만큼 마셨으니 우리도 한판 어울려 봅시다 그려.]
  [ 좋습니다. 저희 마을에서는 오늘 마침 풍년 기축 겸 미륵 전에서 척사대회가 있습니다. 금년 장원에는 암 톳 한 마리가 상으로 주어지지요, 던진다는 사람들은 다 모였을 테니 볼만 할 거요.]
  [그럼 우리 마을도 부쳐 주시려오?]
  [ 물론입니다. 암 톳 한 마리 안고 가시려면, 장원만 하시구랴.]
  이래서 미륵 뜰에서는 모처럼 좌찬현 사람들이 참여한 가운데 윷놀이 대회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미륵 뜰에서는 고봉수라는 윷놀이 명수가 있어서 이날 출전한 선수들을 다 물리치고 장원을 하여 암 톳 한 마리를 차지하였다.
  [ 허허허....  모처럼 오신 손님 대접이 부족했소이다. 우리 동네에서 장원이 났으니 원.]
  [ 운수 탓입니다. 이 사람도 윷놀이 하면, 근동에서야 둘째가라면 서러워 서 못사는 터수외다.]
  [ 그랬었나요? 그럼 우리 한번 정식으로 대항전을 치러야겠군요?]
  [ 좋지요, 언제라도 좋습니다.]
  바로 이것이 발단이 되어서 미륵 뜰과 좌찬현 사람들은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보리흉년 떠넘기기 윷놀이 대회’를 치루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윷놀이의 명수 고봉수가 속해 있는 미륵들 사람들의 승리로 끝이 났고, 좌찬현 사람들은 번번이 보리 흉년을 떠맡아야 하는 불운을 겪었다.
  [ 거 운수가 따르지 않는 모양이요. 다 이겨놓은 마판이 단모치기에 깨지다니.]
  [본래 놀이라는 게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다지만 이렇게 연전연패 하다니, 이제 마을 사람들 볼 체면이 없소이다.]
  [ 감역, 다음해엔 양지 백중이나 용인 난장에 가서 윷 잘하는 야바위꾼이라도 하나 물색해 보시지요. 보리 흉년을 단골로 떠맡다니 원.]
  좌찬현 사람들은 한번쯤 멋지게 이겨볼 요량, 오직 이것 때문에 남사당패를 따라다니며 윷판을 벌려온 전문 도박꾼 윤판석이를 스카웃 해다가 연봉 쌀 닷 섬을 주기로 하고 이적? 해왔다.
  잘은 몰라도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유명 선수를 스카웃하기 시작한 시초가 될지 모른다.
  [자네 윷판 꽤나 벌였다지? ]
  [ 물론입죠, 전국 방방곡곡 한다하는 윷판에서야 윤판석 하면 윷판 끝장입니다요]
  [ 그렇다면 되었네, 아랫마을 미륵 뜰 사람들과 매년 보리흉년 떠넘기기 대항전을 치루었네 만, 그쪽에는 고봉수라는 천하 명수가 있어서 당해낼 재간이 없더니만 이제야 제 놈이 임자를 만난게로군.]
  [ 적어도 윷판 명수 소리 들을 지경이면, 윷점 정도는 달통해야 합죠.]
  [ 윷점을 친다?]
  [ 그렇습죠. 원래 네 가닥 윷을 던져 변화무쌍 펼쳐지는 마판은 제갈량의 팔진도와 같고 네 동산이 업혀가는 단기철마도 연인 장팔사모치기 한번이면 끝장이 아닙니까? 윷판이나 세상살이나 한가지입죠.]
  [ 거참 그럴싸 하이, 그럼 거 윷점 한번 쳐 보시구랴.]
  [ 그럽지요, 가령 윷가락을 세 번 던졌을 경우, 도. 도. 도 이렇게 점괘가 나오면, 이것은 서생원 노적가리 드는 쾌이니 춘하는 불편하되 추동은 대통할 수요,
  도. 도 개 하면 가물에 비 만난 격이니 금년운수 대통하고 생남할 수요.
  도. 도 걸 하면 밤에 등불을 빌어다 소원성취 할 괘며,
  도. 도 모 하면, 꽃 피는 봄날에 야외 거동할 수니 추동은 대통하고 춘하는 태평이라,
  도. 개. 걸리면 여름, 가을에 신병을 조심하고,
  도. 개. 도하면 크게 공을 세우니 춘하는 태평이요, 추동은 대통이라,
  도. 개. 모하면  소가 뿔이 없는 격이니 남의 원망 들을 수라, 칠성님께 기도하고,
  도. 걸. 모 할라치면 용이 바다에 드는 격이니 영화를 누릴 수요,
  도. 모. 모는 나무에 뿌리가 없는 수라 구설수에 오르면 귀양 갈 운이며,
  개. 도. 개 하면, 학이 비천하니 금년에는 귀인을 만나 소원성취 할 수로다. 뭐 대개 이런 것들입니다요, 그러나 이 사람은 아침에 집 나가기 전에 서너 번 던져보고, 괘가 좋으면 좌판을  들고 나가지요, ]
  [ 그럼 점괘가 나쁘면 벌이 안나가나?]
  [ 그렇습니다. 아마 십중팔구는 맞는 게 있으니 묘합지요.]
  [ 그럼 내가 한번 해 볼 테니 내 점괘도 봐 주슈. ]
  [ 그래보시지요.]
‘떨그럭, 걸이요.’ ‘털써덕, 또 걸이요’ ‘ 휙가닥, 모닷!’
  [ 걸. 걸. 모라, 이것은 귀해지고 수를 누릴 괘이나, 죄지으면 면키 어려운 수외다.]
  윤판석이는 윷놀이의 거장답게 제법 읊어 놓는 폼이 역시 이 방면에선 단연 유단자급 거물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헌데, 왜 윷자는 없소.]
  [ 말하자면, 윷에 윷은 여수라, 여자는 제쳐놓으면 탈이라서 윷점에는 없소이다. 그러나 윷자 풀이는 있습지요,
  백락천  용한 글에 군과 농상 같단 말가
  백우편 묘한 법에 천하 삼분 하였고나.
  당대 문장 찾아가니 이태백이 살아있고,
  월녀 서시 찾아가니 천하백이 여기 왔네
 헤헤헤... 한량 질 떠돌이 신세, 그저 입심밖에 는 것이 없소이다.]
  [ 좋소 좋소, 좌우간 그만큼 달관하였으면 이론으론 그만이외다. 그럼 실기로 한번 뭔가를 보여 주시지.]
  [ 그러지요, 부르는 대로 낼 테니 해 보시지요,]
  [ 그럼 걸을 쳐 보시지 ]
  쨀그럭 툭타 ㅡ
  [ 진짜 걸이네?]
  [ 그럼 두모 걸 ]
  덜그럭 펄썩 ㅡ
  한모 ㅡ 두모 ㅡ
  후두둑 덜그럭 ㅡ
  [ 걸이요,]
  [ 되었소이다. 거참 신기 상통했구랴, 그만 하면야 이제 보리 흉년은  떠넘긴 것 같소이다. 하하하....]
  주위 사람들은 윤판석이의 신들린 재주에 감탄하면서 다음 해의 대회전을 벼르고 있었다.

  어느덧 해가 바뀌고 계해년이 되었다. 좌찬현의 감역과 소임은 이곳 최좌수를 찾아갔다.
  [ 좌수어른, 금년에는 우리 마을이 이긴다는 것은 따 논 당상 아닙니까?]
  [ 허허허 그거야 뭐 대강 그런 셈이네만,]
  [ 그래서 말입니다요, 요번에는 우리 마을에서 판을 벌이는 게 좋을까 해섭죠.]
  [ 우리 마을에서 주최 한다는 말이지? ]
  [ 그렇습죠, 마침 박서방네 돼지 뗄 때도 됐구 하니 대동 쌀 내서 암 톳 한 마리 상으로 걸면 됩니다.]
  [ 으해해해ㅡ 그래봐야 도루 우리 것이 아닙니까유?]
  옆에 있던 소임이 변죽을 든다.
  [ 으음 , 그도 저도 다 좋으이, 그것보다 문제는 이제까지 당하기만 했던 분풀이를 우리 마을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확 풀어 보자는 거 , 이거 아닌가?]
  [ 물론입니다요, 어떻습니까 좌수어른.]
  [ 좋을세, 타협들 하게.]
  대회의 유치가 결정되자 미륵들로 사절단이 파견되고 교섭이 성립되었다.

  정월 보름 날.
  마침내 대회 날이 왔다.
  최좌수 댁 사랑채의 넓은 마당 동편에는 좌찬현의 응원단이 서고 서편에는 미륵 뜰 응원단이 섰다. 좌우로는 농기가 드높이 섰고, 댓돌 아래에는 대문짝 크기의 마판이 놓아졌다.
  그 좌우에는 자기편 행마 잡이가 서 있고, 또 올 좋은 멍석이 펼쳐진 후 ‘아시판’ 이 벌어졌다.
  ‘ 아시판’ 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요즈음 빅 이벤트에 앞서 벌어지는 세미파이널과 비슷한 것으로서, 삼판양승인데, 이 시합은 좌찬현 측 선수의 승리로 끝났다.
  서전을 승리로 장식하게 된 좌찬현 사람들은 쾌재를 부르면서 두레소리에 맞추어 덩더쿵 어깨춤으로 분위기를 고조 시켰다.
  치ㅡ 잉!
  빵파래처럼 징이 한번 울리더니 대회장격인 좌찬현 최좌수가 일어나서 대회를 선언한다.
  [ 동민 여러분, 우리 마을은  미륵 뜰 사람들과 더불어 연년세세 친선을 도모해 왔고, 윷놀이 대회를 통해서 형제처럼 우의를 다져왔습니다. 이 해에도 국태민안을 축수하고, 또 풍년 기축의 뜻으로 오늘을 뜻있게 보냅시다.]
  인사말이 끝나자 흐드러지게 새납이 울고 장단 좋게 벅구춤이 한 판 벌어졌다.
  [ 자, 그러면, 오늘의 본 시합에 들어가기 전에 마을 대표 선수를 소개 하겠습니다. 바른 쪽 선수가 미륵 뜰의 고봉수 대표, 왼쪽은 우리 마을 윤판석 대표올시다.]
  선수 소개가 끝나자, 와ㅡ 하는 함성과 함께 쾡자쾡자 두레소리가 드높아 갔다.
  드디어 대 회전이 벌어졌다. 과연 희대의 명승부였다. 고봉수가 모를치면, 윤판석이도 모를 치고, 두 동산이 업고 뛰는 마판 , 뺄모쳐서 나꿔채고, 쫓고 좋기며, 잡히고 잡고, 예상을 불허하는 혼전을 펼쳤다.
  심판장의 해설과 전황이 흘러나올 때마다 박수와 함성이 터졌고, 잡고 잡힐 때 마다 농악소리가 낭자했다.
  [ 자 막판 시작 합니다. 먼저 좌찬현 윤판석 던질 차례요.]
  [ 으랏차 나가신닷!]
  [ 모닷! 와ㅡ 아] 쾡자쾡자
  [ 으랏샤, 나가신 닷! ]
  퍼드득  펄써덕 ㅡ
  [ 모다, 두 모다, 얼쑤 얼쑤 잘한다.]
  [ 간다, 엣쳇체 !] ㅡ 휘리릭 털썩 ㅡ
  [ 모닷! 모야, 잘한다. 윤판석 얼쑤 얼쑤 한번 더쳐라!]
  [ 어랏차 나가신다] ㅡ 획까닥 툭탁 ㅡ
  [ 네모닷! 한 번만 더 쳐라, 네동산이 업어서 방혀로 멕여라!]
  [ 아녓, 세 동산이 업어서 한 모로 빼구선 걸만 쳐라. ]
  [ 그럼 뺄모로 끝내겠수.]
  좌찬현의 윤판석이는 기세가 올랐고, 마을사람들은 단숨에 끝판을 보는가 싶었다.
  [ 에헤라 뺄모다.] ㅡ 휘리릭 털써덕 ㅡ
  [ 에구 걸이다.]
  [ 엥? ]
  윤판석이는 단참에 네모 걸을 친 것이다. 말잡이는 세 동산이만 업어 모 . 걸로 빼자고했다.
  [ 아녀, 석나고 비지밥 긁는다는 말두 못 들었어? 네동산이 업어서 뒷대로 들어 섯!]
  [ 멀리 갈건 뭐있남, 네동산이 싸가지고 방혀로 빠져.]
  [ 그것이 단통수여, 세 동산이만 빼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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