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 이동면 서리 중덕 뒷산에 전해오는 무덤 하나가 있었다.
 
이 무덤은 상처한 농부와 대가 집의 청상과부와의 인연을 맺게 해준
소의 무덤으로, 농부는 소의 은공을 기리기 위하여 소가 늙어 죽자 후하게 장사를 치러주고 그 무덤 앞에 ‘우생원지묘’라는 묘비를 세웠으므로, 사람들은 우생원 묘라 지칭하여 왔으나, 이제는 형체마저 없어지고 전설만이 전해지고 있다.

이 이야기는 조선 중기 효종 때의 일이라고 전한다.
용인현 상동촌면 사기장골에 서춘길 이라고 하는 가난한 농부 한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알뜰한 아낙을 맞아 다섯 살 된 아들 하나와 돌잡이가 된 딸 하나를 두고 단란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는 가장으로서, 열심히 노력하여 서너 두락의 밭도 장만할 수 있었고, 또 암소 한 마리를 사들여 길마질을 시킨 후, 이른 봄부터 쟁기질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이웃 집 떡쇠가 뛰어오면서,
 
  [ 춘길이 이 사람아, 쟁기질 놔두고 빨리 자네 집 가봐.]
  [ 아니 뭔 일이여?]
 
그는 하던 일을 떡쇠에게 넘기고 황급히 집에 당도해 보니 동리 아낙네들이 두서넛 삽짝 문을 드나들고 있었고, 방 안에서는 애들 우는 소리가 난다. 춘길이가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이들이 울다 말고,
 
  [ 아버지, 엄마 아프대.] 하면서 매달리는데 그 옆에는 최주부가 앉아서 자기 마누라에게 사관을 트고 침을 놓고 맥을 짚어보고 있었다.

  [ 아니 여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여?] 하고 말하니 옆에 있던 창순어멈이 대신 말을 받는다.

  [ 나랑 같이 최부자 댁에 방아질을 갔다가 점심 잘 얻어먹고 나서는 글쎄 식은땀을 흘리면서 얼굴이 노래지더니 배가 쥐어뜯는다고 하더니만 이 꼴이지 뭐유. 쯪쯪쯪..]
  [ 그럼 이게 무슨 병이래유?] 최주부는 침구를 챙기면서
  [ 이것이 시체말로 급살 병이라는 거여, 참으로 별 수 없구먼.]
  [ 아니 이 사람은 꼭 살려 내야 하는구먼유, 예? 최주부 어른. ]
  [ 이명은 재천이라구 안혀? 난들 구하고 싶지 않겠는가만, 삼국지에 나오는 화타가 온단들 별수 없게 되었어.]
 
그날 저녁이 지나고 새벽닭이 홰를 칠 무렵, 아내는 조금 의식을 돌리는 듯 했다.

  [ 여보 정신이 좀 나는 거여?]
  [ 여보 내 병은 글렀소, 하지만 시름시름 앓다가 우리 소를 날리지 않게 된 것만도 다행이구료, 나 죽거들랑은 삼년 상 치르지 말고 다른 아낙 맞으시구, 저 애들이나 잘 부탁하오.]
 
이 한마디 유언을 남기고는 그만 운명하고 말았다.

  [ 아이고 여보, 저 어린 핏덩어리는 어쩌라고 혼자 간단말여? 아이고 불쌍해라, 이밥 한 번 제대로 못 먹고 이 무슨 변고여, 사람이 소중하지 소가 다 뭐여, 으흐흐흐흐....]
 
땅을 치고 발을 구른들 이미 한번 간 명운을 어찌 돌릴 수 있겠는가? 춘길이는 살아보겠다고 고생만 하다가 죽은 아내의 장례만이라도 원없이 해 주리라 마음먹고 수의와 관곽을 장만하여 꽃상여를 태워 저승길로 보냈다.

  어허어 ㅡ 허이야
  가내가내 나는 가네
  북망산천에 나는 가네.
  어화어화 어허이 어이야
  명사십리 해당화야
  네 꽃 진다고 서뤄를 말아
  명년 춘삼월 돌아오면
  너는 다시 피련만은
  우리 인생 한번 가면
  움이 나나 싹이 나나
  불쌍한 게 인생이요
  가련한 게 인생일세
  무정세월 살 같이서
  원수 백발 돌아오니
  부모 은공 못다 갚고
  부질없이 나는 가네.
 구성지게 읊어가는 상두꾼의 요령 소리가 가물가물 멀어져 갈 즈음, 동리 아낙네들은 앞치마로 눈물을 찍어내며 한마디씩 던진다.

  [ 공수래공수거라더니, 고생만 하다가 가는구먼 ㅡ]
  [ 하지만 남편 잘 만나 꽃상여만 타고 가네.]
  [ 꽃상여만 타면 다여? 거적떼기에 말려가도 저승 가는 것은 매 한가지여, 자식 생가 하면 이런 몹쓸 사람이 어디 있나.]
  [ 죽고 사는 것을 어디 맘대로 하남유, 부모나 자식 땜에 못 죽겠다고 해서 안 죽어지면 사람 살만 하지유.]
  [ 에그 그러나 저러나 춘길이두 그렇지, 저러다가는 비발을 어떡한댜?]
  [ 아무래두 소 한 마리 날릴꺼여.]
  [ 그래도 그 사람, 아내 고생시킨 게 애석해서 저러는거여, 사람 하나는 진국여, ]

여기 저기 입방아를 찧던 동리 아낙들은 춘길의 사정을 딱해하고 있었다. 아내를 여의고 나서 심봉사처럼 어린 딸의 젖동냥을 하면서 장리 빚에 허덕이던 춘길은 하는 수 없이 마누라 생전에 지악으로 사두었던 소를 내다 팔 수 밖에 없었다.
 
 [ 떡쇠말여, 이제 하는 수 없구먼, 죽은 그 사람이 날보구 그랬는디, 시름시름 앓다가 소 팔구 땅 팔아서 집안 망치구 안가는 게 다행이라구 말여,]
  [ 글씨말여, 자네두 딱한 사람이여, 죽은 사람은 어차피 죽었거니와 산 사람은 자식들 하구 살아야 할 것 아녀? ]
  [ 아니 그럼 그 사람을 거적떼기에 둘둘 말아다가 묻는다는 말여? 난 그리 못햐, 그 사람은 내가 죽인거여, 요새 내가 밥 짓고 빨래하구 애들 치닥거리를 해 보니께, 여자일이 보통 힘든 게 아녀, 게다가 먹이길 잘했나, 입히길 잘했나? 하나에서 열까지 못할 일만 시키구서는, 가는 길에 꽃상여 한 번  안태워 준대서야 나는 사람 놈도 아녀.]
  [ 그럼 소를 내다 팔 생각이구먼?]
  [ 이 시람아 큰 소리루 떠들지말어, 소가 듣는구먼.]
  [ 소가 사람 말을 알아 듣는다는거여? ]
  [ 그게 아니구, 지난 장에 내다 팔려구 했더니만 그걸 알기나 했는지 죽두 안먹기에 하는 소리여,]

그 즈음,  팔도를 떠돌아다니던 양달쇠라는 건달이 안성고을 홍 참판 댁 머슴으로 들어갔다.
눈치 밥으로 팔도를 편력하다가 홍대감 댁에 들어가 보니 인동 백 여 호가 이 댁 소작이고, 일꾼만도 십여 명에, 찬모 침모 하인 등 식솔만도 삼십 여명이 넘는 대가 집인데도, 이집 사람들은 무엇에 쫓기는 듯, 매사 조심하고 삼가며 웃음을 웃거나 큰 소리로 떠벌이는 일이 없었다.
 
딴에는 퍽이도 괴이쩍어 하던 중, 머슴방에서 새끼를 꼬면서 삼돌이에게 넌지시 수작을 걸었다.
 
  [ 자네 팔도 유람 해 봤는가?]
  [ 예서 나갖구 예서 잔뼈가 굵은 놈 인디 언제 팔도 구경을 해 봤것슈, 그럼 형씨는 팔도강산 유람 해 봤슈?]
  [ 거 뭐 사람 사는 거 다 마찬가지지 뭐, 양반 있으면 상놈 있고, 상놈 있으면 양반 있고, 여자 있으면 남자있고, 부자 있으면, 가난뱅이 있고, 잘난 놈 있으면, 못난 놈 있고 말여, 헤헤헤.... 그런데말여, 참 재미있는 일도 많고 씁쓸한 일도 많지.]
  [ 거 애기 한 번 해보라니까요?]
  [ 아따 이사람, 앞으로 죽 같이 있을 사람인데 내 천천히 얘기해 줄거구먼, 참, 그건 그렇고 이집에 무슨 우환이 있는 거 아녀?]
  [ 우환은 무슨.]
  [ 아니 그렇다면, 이 집에 대를 이을 손이 없는 거 아녀? ]
  [ 그런 소리 마슈, 서방님은 과거를 보려고 글공부 한참이슈.]
  [ 그려? 그참, 요상하단말여, 이 댁 식솔이 수십 명 인디 웃음소리는커녕 기침 소리 한마디도 없으니말여, 하다못해 말여 그 정분 난 처녀 총각 종놈끼리 낄낄거리는 소리 두 좀 나야 사람 사는 거 같지 않남?]
  [ 다 그럴만한 연유가 있구만유.]
  [ 아니 그게 뭔감?]
  [ 그게 다 별당아씨 때문이구먼유.}
  [ 별당아씨라니?]
  [ 아 이 안성고을에서 홍참판 나리 댁 하면, 다들 부러워 하는 것 아뉴? 높은 벼슬 하셨겠다. 재산 많겠다. 슬하에 아들 딸 남매 두셨겠다, 다들 하늘 복을 타고 나셨다고 들 하는구만유. 그런데 따님이 스므살 되넌 해에 평택에 있는 임진사댁 이라구, 이름 있는 선비 댁으로 시집을 보냈는댑쇼, 시집 간지 삼년 만에 못된 돌림병을 얻어서 시부모님 잃으시구, 낭군마져 잃고 나서 외톨백이가 되어 그만 친정댁에 와 계시구만유, 아 청상과부가 별당에 와 있으니 주인 나리 내외 심사가 오죽 하겠습니까유. 그러니 자연적으로 우리 같은 아랫것 들두 조심하게 되고, 크게 웃음소리도 내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형씨도 조심 하시라구요.]
  [ 어때? 이쁜가?]
  [ 누구말유?]
  [ 누군 누구여, 별당아씨 말이지.]
  [ 아니 그건 왜 물으슈?]
  [ 응 ? 아녀 아무것두 아녀, 에구구 졸립구먼.]
 
이렇듯 양달쇠가 삼돌이와의 수작에서 이 댁의 속사정을 알고 있을 즈음. 추야 삼경 밝은 달밤,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애간장을 녹이는 듯하고, 벽공에 외기러기 우는 소리에 별당 아씨는 잠 못 이루고 한숨을 짓고 있다.
 
홍 참판은 딸의 한숨 소리에 섞여 나오는 넋두리를 듣는다.
 
[ 아무리 아름다움을 뽐낸들 날아들 나비가 없는 꽃이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리요, 아... 청춘이 아깝고나, 응달에서 소리 없이 시들어 갈 내 신세 어이할고, 부모님두 무심하시지, 이럴 양이면, 차라리 밉게라도 낳으실 일이지 애고....]
 
 딸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장탄식 소리에 홍참판은 가슴을 점이는 듯한 괴로움을 겪어야 했다.
 
당시만 해도 과부의 재혼을 용납지 않았던 사회이고, 더욱이 양반의 가문으로서야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니 일부종사의 속박은 절대적인 규범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삼돌이가 홍참판 앞에 꿇어 읹았다.
 
  [ 네 이놈, 내가 시키는 일이라면목숨이라도 내 놀 수 있으렸다?]
  [ 예 예, 바치구 말굽쇼.]
  [ 네 나이 지금 몇이더냐?]
  [ 스믈 일곱입니다요.]
  [ 글도 조금ㅇ른 알렸다?]
  [ 웬걸입쇼, 어깨넘어 글 동냥으로 겨우 까막눈만 면했습죠.]
  [ 음 그래? 내 네게 짝을 지어주고 돈 천냥도 줄 터이니 먼 함경도 땅에가서 소문도 내지 말고 소식도 끊고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갈 수 있으렸다.]
  [ 뭐라굽쇼? 마님, 그 짝이 누군뎁쇼?]
  [ 바로 별당 아씨니라.]
  뜻밖에도 대감의 은밀하고도 지엄한 분부에 삼돌이는 정신을 차릴 수 가 없었다.
  [ 마, 마님, 그런 분부는 차마 받자올 수 없습니다. 저 같은 놈이 어찌 감히 대감의 따님을...]
  [ 허ㅡ 농담을 하는 게 아니다. 네가 비록 내 종일망정 성실히 봐 온 터에 특별히 부탁하는 게야. 어쩌겠느냐, 내 사위가 되어 주겠느냐?]
  너무나 충격적인 대감의 분부에 몸 둘 바를 몰랐다.
  [ 이보게 이미 쏘아놓은 살이요, 엎질러 진 물이니 우리의 청을 들어주어야 하네, 내 말 알아 듣겠나?]
 
옆에 있던 홍대감 부인의 간곡하고도 진지한 말에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소인 불감청이나 고소원 이옵니다. 황공하옵신 분부를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 내 따로이 돈을 줄 터이니 순한 암소를 사 오도록, 그 후 돈 천양과 짐을 싣고 내 딸을 태우고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는 주로 밤에만 길을 가서 낮에는 사람의 눈을 피해 산길을 따라가기를 게을리 해서는 안되느니라, 또 그곳에 도착해서는 신분을 숨기고 생업에 종사 한다면, 내 밑에서 종노릇으로 일생을 마치는 것에 비할 것인가? 당대에는 몰라도 자손 대에는 벼슬길도 트일 수 있을게야. 내말 명심 하렸다.]
  [ 예, 명심하고말고요.]
  [ 평택 장날이 언제냐?]
  [ 내일이구먼유.]
  [ 하루는 빠듯 하렸다.]
  [ 예.]
  [ 용인 장날은 그럼 언제냐?]
  [ 내일 모래구먼유.]
  [ 하루면 무난 하렷다.]
  [ 왕복 팔십리 길이니 넉넉하구 말굽쇼.]
  [ 음, 그러면 모래 아침 일찍 나한테 오너라, 소 살 돈은 그때 주겠다..]

그러면서도 홍대감은 마음이 놓이지를 않았다.
 
  [ 네 이놈, 이 말을 발설하는 날에는 우리 가문도 망하고 네 일생 또한 그 날로 끝날 터, 무슨 일이 있어도 비밀은 지켜야 하느니라.]
  [ 암유, 그러구 말굽쇼.]
 
 
대감 앞에서 단단히 언약을 하고 방문을 나선 삼돌이는 저절로 흥이 났다.
종놈의 주제에 양귀비 뺨칠 대감댁 규수에다가 돈을 얻으니ㅏ 인생을 사는 보람이 모두 자기에게만 해당되는 것만 같은 뿌듯하고도 벅찬 행복 감, 이것을 삼돌이는 주체할 수 없었다.
머슴방에 돌아와서도 저절로 입이 벌어지고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것이다. 짚신 짜던 일도 팽개쳐 버리고 벌렁 들어누어서 혼자 싱글 벙글한다. 이것을 보고 있던 양달쇠는,

  [ 이봐 삼돌이 어디 아픈가?]
  [ 아파? 아니 형T는 아프면 웃소?]
  [ 아니 일 안해? 하던 일이나 마저 해치우고 자잔 말여.]
  [ 아니 내가 누군데 새끼나 꼬면서 앉자 있게 되었냐 이거여, 그건 그렇고 형씨 경상도에서 있었다던 애기나 한 번 해 보슈, 거 뭐 과부 집에 들어갔다가 혼줄 난 애기 말유.]
  [ 이거 봐, 삼돌이 주인 나리한테 왜 갔다 왔지?]
  [ 이히히히... 아무 것 두 아니구먼유,]
  [ 뭐 좋은 일 있었지? 어때 내 말이 맞지?]
  [ 예? 나 같은 무지랭이가 뭔 좋은 일이 있겠수.]
  [ 그럼 내가 말해볼까]
  [ 맞춰 보슈.]
  [ 이집 유월이 하고 결혼 시켜준데?]
  [ 에에? 그까짓 일이 무에 좋은 일이유.]

 
팔도 눈칫밥 먹은 양달쇠, 삼돌이에게 모종의 일이 있으리라는 감을 잡고 있는 것이었다.
양달쇠는 요샛말로 신입례 비슷한 것을 낸답시고 주막으로 끌고 가서 술을 퍼 먹여서 고주망태로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삼돌이는 술김에 그만 벅차기만 했던 행운의 내막을 술술 불어 놓고 말았던 것이다.

 이튿날.
 
 [ 이보슈 양형, 어제는 기분 좋게 마셨구먼유, 그런디 내가 취중에 무슨 말을 했지?]
  [ 응? 아무 소리도 안했구먼.]
  얄달쇠는 시치미를 떼었다.
  <.... 그런디 아무래도 이상하구먼, 저놈이 일부러 술을 퍼 먹인게 아닌감?...>
  삼돌이는 수상하게 생각 하면서도 아침을 마친 후 대감 마님앞에 불려 갔다. 주인 마님은 전대를 주면서,
  [ 단단히 챙겨라, 이길로 용인장에 가서 소를 사서 산속에 숨어 있다가 오늘 밤 칠장사에서 종소리가 나거든 별당 뒷문 밖으로 오거라, 시각을 넘겨서는 안되느니라, 그럼 어서 떠나거라.]
 
이렇게 해서 삼돌이는 용인의 쇠장에가서 소룰 고르는데, 마침 서춘길이가 끌고 나온 암소를 보았다.

  [ 이 소는 얼마유?]
  [ 이 소를 사시려우? 사려거든 잘 좀 보살펴주슈, 집 사람이 살았을 때는 어찌나 알뜰히 보살폈는지 엉덩에 쇠똥하나 안묻혔구먼유, 그러구서는 늘 자식같이 어루만지면서 하는 말이 < 너는 비록 말 못라는 짐승이다마는 우리와 한 솥밥 먹는 식구이니 어서 많이 먹고 기운내서 우리 집 살림 늘려 부자가 되면, 네 은공 어찌 잊겠느냐?>면서 사람 대하듯 했으니 말유, 튼튼하고 일 잘하고 나무랄 데 없으니 살 테면 사슈.] 

 
이렇게 해서 삼돌이는 춘길이의 소를 사서 산속에 숨어 있다가 칠장사 인경소리에 맞추어서 별당 뒷문에 대기 하고 있었다.
 대감 댁에서는 어김없이 돈 천냥과 장옷으로 얼굴을 가린  이십 삼사세의 절세 청상과부를 뒷문으로 내 보냈다.

삼돌이는 잽싸게 별당 아씨를 소 위에 태우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그러고 난 후 홍판서 댁에서는 갑자기 별당 아씨가 자진하여 일부종사 절의를 지켰다고 하였다. 잡인의 접근이 일체 금지 된 채 시체없는 빈 관만이 북망산에 뭍혔다.

한 편, 밤 길을 떠난 삼돌이는 쇠고삐를 잡고 나긋나긋 움직이는 별당 아씨의 허리춤을 흘끔 거리면서 험준한 구봉산 기슭을 막 돌아서려는 순간 때 아닌 괴한이 나타났다.
 
  [ 누 누구냐?]
  [ 꼼짝마라, 목숨이 아깝거든 그 고삐를 놓고 없어져라.]
  [ 예? 아니 양달쇠, 당신이 왼일이슈?]
  [ 으흐흐흐... 네놈의 주둥이가 가벼웠느니라, 고주망태가 된 네놈의 주둥이가 양달쇠 어른에게 모두 털어 놓았느니라. 네놈 덕분에 팔자 한번 고쳐보자 이 말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네놈 오기를 기다리신지 오래다.]
  [ 에잇 죽일 놈.]
 
 
결국 두 사람은 치고받고 하다가 한 덩어리가 되어 깊숙한 벼랑으로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이 통에 올데갈데없이 된 별당 아씨는 집으로 돌아갈 수 조차 없게 된 신세였을 뿐 아니라, 사생을 결단하여 치고받다가 깊숙한 벼랑으로 떨어진 삼돌이만을 무작정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더욱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소가 움직이는 대로 딸아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소를 내다 판 춘길이는 새벽녘에 외양간에서 소 우는 소리를 들었다. 춘길이는 평소와 같이 쇠죽을 끓여야 하는 시각인줄 알고 부스스 일어나면서,
 
 [ 벌써 날이 샜구먼, 빨리 쇠죽을 쑤어야지, ... 아참, 헤헤헤헤... 내 정신좀 봐 어제 장날 소를 팔 아버리질 않았나베. 밤새도록 소 꿈만 꾸었더니 헛들은 게여. 소가 없는디 쇠죽은 끓여서 뭘 한담? 에라 잠이나 더 자야겠구먼. ]
 
혼자 중얼거리면서 다시 누었는데 삽짝 밖에서 소 방울 소리가 나며, 귀 익은 소 울음소리가 나는 것이다.
 
 [ 거참 이상하네, 소 판 것이 상심이 되어서 내가 정신이 돌았나? 저건 분명히 우리 소의 울음소리여.....]
 
 
춘길이가 미닫이를 열고 밖을 내다보니 붉으레 밝아오는 동녘의 여명을 받으며 내다 팔았던 소잔등 위에선녀 같은 미인이 타고 있지를 않은가?

춘길이는 황급히 나가면서
 
  [ 어인 행차시온지요?]
  [ ........ ]
  [ 아니, 새벽이슬에 몹시 추우신 것 같은데 우선 방으로 드시지요.]
  [ 예 ]

춘길이는 소잔등에서 별당아씨를 부축하여 내리고 방으로 안내 한다. 방 안에는 남매가 곤한 새벽잠이 들어 있었다. 춘길은 아랫목 이부자리를 걷고 별당 아씨를 앉힌 다음, 자기가 내다 판 소가 다시 제 집을 찾아오게 된 연유를 알게 되었다.
 
 [ 그렇게 된 것이옵고, 어차피 재취 하셔야 할양이시면, 오갈 데 없게 된 이 박복한 신세를 거두어 주시면 평생 지아비로 모시겠습니다. 또한 제 신분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 하시옵고, 여기 천양이 있으니 세간이나 마련하시지요.] 
 
이때 아들놈이 잠을 깨더니
 
  [ 엄마, 엄마가 왔다. 엄마 어디를 갔었어?]
  [ 응? 엄마가 왔어?]

두 남매가 깨어 와락 별당 아씨의 품에 안긴다. 별당 아씨와 춘길은 마주보며 미소를 지으니 이로써 부부의 하루가 시작 되었던 것이다.억세게 재수 좋은 사나이는 소가 맺어 준 인연으로 하여 오래도록 잘 살았다고 하거니와, 사람은 주인을 위해 복을 싣고 돌아온 소를 우생원이라고 부르다가, 소가 죽은 후에 무덤을 만들어주고 그 묘 앞에 牛生員之墓 라는 묘 비석 까지 세워 주었으나, 그 후 세월이 흐름에 따라 묘는 없어지고 전설만 전해오고 있을 뿐이다.<전설의 고향 채록 각색>                                            - 이인영 (향토사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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