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일용 물종과 잡화가 넘치고, 팔고 사려는 사람들이 골목을 메우며 싸구려를 외치는 목소리가 여기 저기 쉴 새 없이 터져 나와, 멈추고 기웃거리는 아낙네들의 발 거름을 더디게 하는 용인 장날.
깔았던 자리라도 들고 간다는 장날은 새롭고 신기한 구경거리와 눈 요기 감도 심심치 않아 안 가고는 못 배기는 장꾼들도 있는 것이다.
고추, 마늘, 감자, 채소류의 농산물, 감, 대추, 곶감 같은 과일 등이 계절 따라 팔려 나갔고, 생선, 어물 두룸을 지게 다리에 매달고 돌아가던 장날의 논두렁길에는 뉘엿뉘엿 석양의 노을이 비친다.
그리고 장날이 되면, 한적하던 신작로가 새벽부터 부산하다. 자갈길을 구르는 마차바퀴 소리에 곁들여 들려오는 장꾼들의 떠드레 한 목소리 중에는 혼사, 제사, 학비, 곗돈, 아니면 빚진 돈 갚을 얘기하며 대추나무 연 걸리 듯 엉클어진 사연 들이 떠밀리는 것이다.
그래서 시골 장날은 장도막에 이루어 졌던 각개 사정들의 매듭이 풀려 나가는 해결의 장이며, 농촌 경제 순환의 통로이기도 했던 것이다.
특히 용인의 쇠전은 광주, 이천, 안성, 평택, 수원등지에서 몰려오는 소몰이꾼과 흥정꾼 개평 꾼, 그전 꾼 등으로 혼잡 했으며, 거액의 현금이 유통되고 있어 소를 팔고 사러오는 사람들은 든든한 이웃 서넛은 달고 있어야만 했음으로 더욱 붐볐다.
예전에 양지의 가장골에 사는 황서방과 이동면 서리쯤에 사는 박서방이 있었다.황서방은 황소를 길렀고, 박서방은 암소를 길렀다. 황소를 기르던 황서방은 암소를사 려 하였고, 암소를 기르던 박서방은 황소를 사기 위해 용인쇠전을 나왔다.황서방과 박서방은 사돈지간으로서 각자 맘에 드는 소를 고르려고 서로 기웃거리다가 한 곳에서 마주쳤다.
오랜만에 만난 양쪽 사돈은 그동안 격조했던 터라 아들, 딸들이 잘 사는지 궁금하여 집안 사정을 물은 다음, 어떤 일로 쇠전을 나왔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박서방은 암소만 길렀더니 송아지 낳는 것 뒷바라지하기도 귀찮고 해서 씨억씨억한 수소를 먹여 보려고 한다 하였고, 또 황서방은 수소만 길렀더니 송아지 낳는 이웃이 부러워 바꾸러 왔다는 것이다.피차 원하는 입장에서 각기 필요로 하는 소를 가지고 나왔으니, 흥정꾼 붙이고 구전주고 할 것 없이 서로 믿는 사돈끼리 소를 바꾸면 될 것 아니냐고 하여 타협을 보았다.
그래도 황서방은 새끼 낳는 암소가 더 비싼 듯하니 웃돈을 받아 가시라고 하면서 돈을 내려고 하였고, 박서방은 힘세고 일 잘하는 수소가 더 비싼 듯 하여 웃돈을 내려 하였으나, 사돈지간에 그러면 안 된다고 서로 사양 하였다.
그렇다고 머쓱하니 그냥 헤어질 수도 없어 서로 술이나 한 잔 나누자는데는 따로 이의가 없었으므로 이 사돈이 한 잔사고 저 사돈이 한잔 사고 서로 권하여 먹고 마시다 보니 사람이 술을 먹는 단계가 지나 술이 술을 먹고 종래는 술이 사람을 먹는 지경까지 이르러서야 끝장이 났다. 달이 중천에 떠서야 자리를 뜨기는 하였으나, 몸을 가눌 수가 없었으므로 서로 바꾼 쇠등에 올라타고 길을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소들은 주인과 여러 번 장을 다녀 보았기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익숙하여 각기 저 살던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양쪽 집에 당도한 소는 각기 저 잠자던 외양간으로 들어가고 양쪽 사돈은 각기 자기 집에 온 것으로 알고 더듬덕듬, 안방으로 들어가서 부인 곁에서 코를 골았다. 양쪽 안사돈 들은 바같 양반들이 장에 간 일이 잘 되어 취했거니 생각했다. 으레히 장에 가면 취해 오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새벽이 되었다. 조갈이 나서 잠든 부인을 깨우며 냉수를 떠 오라고 하였다. 안 사돈은 냉수를 떠 가지고 방에 들어와 물을 주려고 하다가 영감의 얼굴을 보니 이거 자기의 남편이 아니었다. 밤새 안 사돈과 바같 사돈이 한 이불 속에서 잠을 잔 것 이였다.
아연 실색 들었던 냉수를 뒤집어씌우는 바람에 정신을 차린 바깥사돈들 역시 놀라기는 매 한가지였다. 아뿔사, 일이 어찌되어 이 지경인가? 하면서 대문을 박차고 맨발로 줄행랑을 치고 있었다.
서로 뛰어오다가 사돈끼리 길에서 마주쳤다.
[ 아니 사돈 어디를 다녀오시오?]
[ 아니 사돈은 어찌 된 일입니까?]
[ 글쎄 난들 알겠소? 잠자다가 보니 사돈댁 안방이라서..]
[ 뭐요? 나도 그랬소만, 사돈 양반도 제 집 사람과 주무셨소?]
[ 그렇기는 합니다만, 별일은 없었소이다.]
[ 나도 그랬소, 피차 취기가 지나쳤으니 잠만 잘 수밖에..]
[ 다행이구랴]
[ 다행이구랴 ]
[ 으하하하하...]
[ 으해해해해...]
소를 바꾸려다가 소가 사람을 바꾸어 놓는 바람에 각기 안사돈과 하루 밤씩 묵었다는 해괴한 일이 있었으나, 피차없었던 일로 하였고, 이의 사실을 비밀로 하여 아는 사람이 없었으나, 그런 일이 있은 후로 백여 년 만에 하나의 전설로 밝혀 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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