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천(炭川)과 삼천갑자 동방삭(東方朔)


산다는 문제, 이것을 거론한다는 것은 참 골치 아픈 일이므로 가급적 그냥 접어두고 사는 편이 훨씬 배짱 편한 일이다.

어차피 살다가 죽게 되어 있는 것이 자연 법칙이고 신의 섭리라면 뉘라서 이를 거역할 수 있겠는가?

이 세상 수십억 인구에게 조금씩 배당된 자기 몫만큼의 삶을 살다가 제각각 가게 되어 있는 시한부 인생들이 하늘을 향해 곤대 질을 해 보았댔자 구정물 통의 장구 벌래 보다 더 낳을게 뭐가 있겠는가?

그러나 인간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천만년이나 살 것처럼 명예, 지위, 부귀, 권세 뭐 이런 것 때문에 눈에 불을 켜고 아귀다툼을 하지만, 그것도 코로 숨이 통할 때의 이야기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이란 게 우주의 영속성에 비한다면, 한갓 남가일몽이요, 일장춘몽에다가 그저 찰나에 불과한 것이다.

천하일색 양귀비를 비롯해서 아황, 여녕, 을서시 하며, 역발산기개세 하던 항우장사도 염라대왕의 호출이 있을 때는 어김없이 한 줌 흙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단 한사람 죽기를 거부한 돌출 인사가 있었다. 저승사자를 기만하고 무려 삼천갑자의생을 누렸다는, 이름 하여 삼천갑자 동방삭-

삼천갑자를 햇수로 따진다면 무려 18만년이 된다.

이렇게 살았다는 것을 필설로 옮긴다는 것도 덜 떨어진 소리- 삼척 동자 에게도 먹혀들지 않을, 뻔한 공갈? 이다.

그러나 어찌 되었던지 간에 이 사람은 해학적 기질과 유머 감각이 풍부했던 중국 한무제 때의 실존 인물로서, 일찍이 우리나라를 다녀가서 “동방신이기(東邦新異記)”라는 저서까지 남겼다고 한다.

좌우간 이처럼 진절머리가 나도록 살았다는 동방삭이도 염라대왕이 보낸 저승사자를 피해 다녔다고 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생에 대한 애착은 이처럼 끈질기고도 집요하고 악착같으며 치사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동방삭이가 삼천갑자를 살던 최후의 날, 저승사자에게 잡혀간 현장이 용인의 탄천 이였기 때문에 그 사건의 전말을 이에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어느 날.

저승사자가 동방삭을 잡으러 내려 왔다.

[가세 ]

[가다니 어디로요 ?]

[어딘 어디야 저승이지]

[아니, 내 명운은 아직 구만리 장천 같은데 어찌하여 벌써 날 잡으러 왔소이까?]

[염라대왕 청 생명록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자네 명운의 기한은 오늘이 마지막이기 때문 이라내]

[어허- 당신네들 기한이라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요? 내 저승에 있을 때, 옥황상제로부터 크게 상을 받고 삼천갑자의 생을 누릴 수 있도록 특전을 받았는데, 하물며 염라대왕 따위가 이를 어찌 알고 감히 날 잡으러 보냈다는 거요.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여생, 십칠만 구천 구백 사십년에 대한 보상은 어찌할 것이며, 일을 잘못 처리한 당신들의 죄과는 어찌하겠다는 거요? 내야 저승에 있으나 이승에 있으나 매양 한 가지 이거니와, 만일 일이 잘못되어 간다는 것을 알고도 날 잡아간다면 , 그 때는 염라대왕은 물론, 그대들 역시 단죄 될 것이 뻔하지 않소? 그러니 다시 가서 잘 알아 본 후에 날 잡아가도 늦지는 않을 터인데- 어떻게 하겠소? 내가 지금 가야 되겠소, 말아야 되겠소, 엉?]

[어? 그런 일이 있었는가? 나 같은 사자야 그저 시키는 대로 할 뿐, 뭐 아는 게 있겠는가? 그럼 곧 가서 다시 알아 본 후에 다시 옴세, 뭐 섭하게 생각 할 것까지야 있나, 참게]


대개의 인간들은 저승사자를 만나면 마치 고양이 앞의 쥐처럼, 그리고 삶은 파처럼, 주눅이 들거나 오금을 펴지 못하는 것이 상례인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당당하게 큰 소리 치는 것을 보면 뭔가가 있기는 있는 모양 같았다. 때문에 저승사자는 그대로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천상에서의 일각은 이승의 일백년과 맞먹는 세월이리니, 동방삭은 그 틈에 마음 놓고 느긋하게 삶을 즐길 수 있지 않았던가?


저승사자는 동방삭의 생명록 문적을 확인 해 보았으나, 틀림없이 동방삭의 이승 살이 기간이 육십년 밖에 되지 않았다.

[이거 봐? 분명히 육십년 밖에 안 되지 않아?]

저승사자는 부랴부랴 동방삭을 다시 잡으러 내려 왔다.

[ 동방삭. 자네의 명운은 육십년이 틀림이 없네, 어서 가세나]

[ 어허, 이처럼 앞뒤가 막혀서야 원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옥황상제께서 내게 베푸신 은전을 확인 해 보셨습니까?]

[아니 그것 까지는 확인을 못해 왔네]

[그럼 무었을 확인하였소이까?]

[그야 인간들의 생명록 아닌가 베?]

[아니 ? 아직까지도 생명록이 고쳐지지 않았다면, 저승에 있는 녹사는 밥 처먹고 무었을 했다는 거요? 염라대왕 청 기록이 그 지경이라면 옥황상제의 은전도 있으나 마나 허사가 아니겠소? 제 말이 정 믿어지지 않는다면, 그럼 이것을 보십시오]라면서 웃옷을 훌떡 벗고 등짝을 보인다.

[이것이 그 증거외다. 상제께서는 필시 오늘과 같은 불찰이 있을 것을 염려하시어 이렇게 옥새까지 찍어 주지를 않았겠소] 라면서 등창 앓았던 흉터를 보여 주었다.

[이것이 옥황상제의 인이란 말인가?]

[아니- 저승사자가 옥화상제의 인을 모른다는 거요?]

저승사자가 옥황상제의 인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조차 분간을 못하자 동방삭은

[그럼 되었소이다. 이것으로 증거는 충분한 즉, 염라대왕께 본대로 복명하시면 될 것이고, 그도 믿기지 않으신다면, 직접 상제께 조회하여 보시면 될 일이 아니오이까?]

[알겠네, 그럼 다시 가서 확인해 본 후에 또 옴세-]


천상에서나 지상이나 고위층 팔아먹는 수법은 통했다는 말인가? 이 통한다는 것도 잠시의 변통일 뿐, 결국 위증, 공갈 사기로써 순진한 저승사자를 농락하고 공무 집행을 방해한 죄상이 백일하에 들어나게 되었으니, 이 무서운 업보를 장차 어찌 감당할 것인가? 또, 세상에 죄짓고 마음 편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동방삭이도 속일 만큼 속였고 또, 더 속일 재간도 없었으므로 장차 닥쳐 올 처벌이 두려워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한번도 아니고 두 세 번 씩 이나 저승사자에게 헛걸음을 시키고서도, 제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고 용서받을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은 채, 슬그머니 종적을 감췄다는 이 사실이 얼마나 괘심하고, 야속하고, 얄밉고, 싸가지 없는 놈팽이의 소행이란 말인가?

체면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저승사자는 와신상담, 이를 갈고 치를 떨며, 눈에 쌍심지를 켜고서, 놈을 찾았지만, 그러나 하늘로 솟았는지 땅속으로 꺼졌는지, 도대체 종적을 찾을 수가 없는데다가, 이 친구가 삼천갑자의 인생을 누리는 동안 구미호가 되어서 육도삼략, 삼십육계에 도통하여, 염라대왕 청 저승사자들의 움직임까지 손금 보듯 할 뿐 아니라, 변신술과 축지법까지 능통하여 용케도 저승사자의 수사망을 피해 다녔다.

<향토사학자 이 인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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