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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하이족(渤海族)은 누구이고, 코략족(高麗岳族)은 누구인가?

이병화(농경영학, 경제학 박사)

필자는 고고학이나 인류학 또는 민속학 전공자가 아닌 농학자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1989년이래 지금까지 극동러시아를 170여 회를 왕래하면서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톡, 하바로브스크주의 하바로브스키, 아무르주의 볼라고베챤스키, 캄챠카주의 페트로파블로브스키, 코략자치구의 팔라나 등에 있는 고고학박물관과 민속박물관 등에서 보고, 읽고, 듣고, 느끼고, 또 이 지역들에서 발굴된 발해인과 후손들의 유적과 흔적의 실체를 보면서 언젠가 이것을 글로 남겨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리가 미약하지만 이것이라도 발해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국민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용기를 내어 쓰게 됐다.

● 발해국 지배층은 고구려인이고, 기민층은 흑ㆍ백수 말갈족과 거란족 및 기타 소수종족이었다
극동러시아의 박물관 지도를 보면 보하이족 즉, 발해인들이 세운 발해국 국토넓이는 지금의 남북한 면적(약22만㎢)의 2.7배로, 이는 일본과 한반도를 합한 것과 같은 면적이다. 인구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약 300~500만명 정도일것이라는 기록이 다수의 문헌에서 나온다.

지배층인 고구려 후예들은 같은 자리에 뿌리내리는 정주권 생활인 유축(有畜)ㆍ경종 겸업 농업을 했고, 기민층은 몽골족 등과 유사한 반유목생활을 했는데, 이것은 다시 3갈래로 나뉘어 진다. 소, 말, 양 등 가축을 키우면서 이동하는 종족인 거란족과 백수말갈족이 비중 높은 첫째 갈래이고, 두 번째 갈래는 첫 번째의 일부와 기타 소수종족들이 수렵을 하면서 모피를 팔아 생활하는 것이었고, 세 번째 갈래는 흑수말갈족과 나나이족이 흑수(흑룡강과 아무르강을 지칭)강과 바닷가에서 물고기와 물개, 물범, 고래 등을 잡았다.

이들의 대략적인 또 다른 구분은 입은 옷으로 구별하는데, 길쌈으로 옷감을 짜서 입으면 지배층이고, 피지배층은 소ㆍ양 등의 가축으로 털옷을 입은 백수말갈족과 거란족이고, 호랑이ㆍ곰ㆍ사슴 등 야생동물의 털과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은 종족은 대부분 소수 기타 종족이거나 극히 일부의 말갈족과 거란족이고, 물고기 껍질과 물개ㆍ수달피 등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면 대체로 흑수말갈족과 나나이족이다.

고구려가 망하고 30여년 후인 서기 698년에 건국된 발해국은 926년 요나라에 멸망하기까지 228년 동안 이들이 사용한 문자는 한자였으나 언어는 고구려어ㆍ말갈어ㆍ거란어ㆍ나나이어 등 4종류로 각기 사용되었다. 이로 인해 행정조직을 「5경16부62주」으로 중앙정부와 광역단체, 지방 및 기초단체로 나누어 자치권한을 부여했고, 그 지역의 수장은 한자와 고구려어를 사용할 수 있는 관리가 중앙에서 파견되어 업무를 관장했다.

발해가 몰락하기까지 228년 동안 지배층의 고구려인들은 말갈족, 거란족, 기타 소수종족과 나나이족 등과 혼인이 빈번하였다.

고구려가 멸망하고 30년후에 그들의 후예들이 발해를 건국했듯이 발해가 멸망하고 50여년만에 오츠크해와 베링해 사이의 캄챠카 반도에 이들의 후예들이 모여 ‘고려의 언덕(高麗岳)’이라는 코략마을이 만들어 졌다.(코략은 러시아식 이름이다.)

● 코략족의 지배층은 고려쪽을 향하여 제사를 모셨다
대략 고려 성종 제위시기(981~996년). 풋콩, 보리, 메밀 등의 농사를 짓는 코략족이 캄챠카에 나타났다. 이들은 발해인과 흑수말갈족과의 혼혈종으로 문자는 한자로, 숫자의 계산은 원주민과 달리 십진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발해가 멸망할 때 살았던 일부가 바닷가를 따라 북으로 가다보니 캄챠카 반도에서 가장 따뜻한 팔라나 지역으로 거꾸로 내려와서 정착한 것이라고 유추하고 있었다. 또 코략족의 지배층은 발해유민과 흑수말갈족의 혼혈인이고, 기민층인 피지배자들은 원래 캄챠카에 몽골반점이 형성되는 원주민이었다. 이렇게 사연 많은 코략족의 샤먼들은 지금도 고려가 있던 방향으로 제사를 모시고 있다.

스탈린 시절(1930~40년) 코략족은 자치구로 승인받았고, 당시 자치구내 인구는 사냥꾼인 러시아인들을 포함하여 약58,000여명이었고, 팔라나 행정도시에는 15,000여명이 살고 있었다.
코략자치구의 면적은 한반도와 유사(22만㎢)하고, 지금도 경종농업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수렵과 연어잡이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푸틴 정권은 코략족이 3만명이하로 줄어들었다고 자치구역을 해체하여 캄챠카주에 예속시켜 버렸다.

● 코략족의 생활형태는 우리와 너무 닮았다
지금부터는 사실에 입각한 기록들과 필자가 본 것을 정리해본다.
▲ 개고기를 신에게 바치고 의식 후에 같이 나눠먹는데 육개장과 유사 ▲ 순록과 사슴의 창자를 이용하여 순대를 만들어 먹음 ▲ 샤머니즘이 매우 강하고 명절과 추석 때 무당이 제사를 집행 ▲ 온돌을 사용하는데 바닥은 돌로 만들고 벽은 나무로 수직온돌을 만들었음 ▲ 결혼 전후 2~3년간 처갓집에서 생활하고 손주는 외할머니가 키움 ▲ 서당 같은 곳이 있어 어린이들을 무당이 키우고 공부(셈본)를 가르침 ▲ 결혼식 날 처녀도둑이라고 신랑을 매달아 놓고 발바닥과 궁둥이를 몽둥이로 때림 ▲ 순록과 사슴의 뿔을 보약으로 달여 먹음 ▲ 도둑을 최고 범죄로 간주하고, 어른들 앞에서는 술과 담배를 돌아서서 함 ▲ 생선국을 아주 잘 끓이고 잘 먹음 ▲ 동물 젖과 보리를 혼합하여 먹걸리 같은 술을 만들어 먹고 안주는 생선젓갈을 먹음 ▲ 병든 자나 고령자를 격리시켜 죽이는 고려장과 같은 풍습이 있음 ▲ 아기를 등뒤에 업는 것은 우리와 같음 ▲ 제사 후 술과 음식을 동서남북으로 뿌리며 고수레를 외침 ▲ 어린아이와 여인들은 색동옷을 귀한 것으로 여겨 설 명절 때 입음 ▲ 노랫소리가 불경과 같으며 아리, 아이고 등 아리랑 발음이 많음 ▲ 나무젓가락을 사용함 등이다.

이러한 내용들을 연구한 러시아 사학자 일부는 보하이족과 코략족을 혼돈한 사례가 있고, 같은 혈통으로 규정한 학자도 있다.

* 이병화 박사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경제특보실 농업생산 담당관, 신갈농민학교장을 겸직했고, 이후 해외농업개발을 위해 러시아 연해주, 중국 동북3성, 몽골, 필리핀 등에서 활약했다. 박사학위는 러시아에서 취득했으며, 현재 기흥구 고매동 새마을주택1호에 거주하고 있다.

김신근 기자  so60s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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