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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경지의 세계>-⑨ ‘죽음 앞에 서서…죽음에서 사랑을’ (1부)

 

중앙대학교 김왕석 전 교수

사람들은 아주 가끔씩 죽음을 생각한다. 아주 가끔씩...

만일 우리가 죽음과 본질적으로 마주서 보면 어떻게 될까? 공포와 두려움이 앞설까? 아니면 망설임? 도피? 어떤 느낌이 들까?... 분명한 것은 죽음은 우리에게 어떤 진지함을 주지 않을까 이다. 

선거에서 3번의 낙방, 동료교수들과 동문들의 싸늘한 시선, 제자들의 퇴진운동. 지구당과 학교에 사표를 쓰고 병원을 찾았다. 당이 600을 치솟았고, 간을 조사한 의사가 소스라쳤다. 체중은 한달만에 85kg에서 55kg... 모든 것이 내 책임이었고, 내 운명이었다. 2005년, 나는 그렇게 죽음과 마주섰다.

그날 밤 한기 속에서 순간적으로 눈이 휘둥그레 졌다. 불이 꺼져있는 가운데서도 살갗의 솜털들이 솟았고, 머리속은 텅 비었지만 밝고 맑았다. 무너지든 육신의 에너지가 어디인가로 부터 새롭게 충전되었다. 곁에서 자고 있는 아내의 숨소리가 선명했고, 잠자는 아이들의 모습도 더 뚜렸했다. 마치 모르는 사람에게 느끼는 동정과 자비가 느껴졌다. 

심리적으로 그날 나는 죽었고, 다시 살아났다. 그 경험은 그 후 항시 나를 따라 다녔고, 내 삶은 달라졌다. 죽음을 체험해본 사람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일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생명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이 생생했다. 죽음과의 경계선이 친숙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보고 듣는 것, 우리가 경험하는 사회적 관계와 인간관계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견고하지 않거나 사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은 머리속에서 펼쳐지는 상상과 고뇌의 세계가 아니라, 눈앞에서 펼쳐지는 있는 그대로의 구체적 현실이 중심이라는 자각도 들었다. 평소의 욕망과 아집으로 가득 채워진 몸과 마음이 세상을 향해 통렬히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세상이 생생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날이 오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생활하면서 우리의 생각이 죽음에서 멀어지면, 게으름이 길러지고 나태에 빠지기 쉽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넉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막연한 일과 미래에 에너지를 낭비하게 된다. 그건 착각이다.

“이 일을 꼭 지금 해야 하나? 다음에 하면 되지 않나? 좀 더 생각해 보고 선택하지...”

이런 미련들은 경험하는 일에 대한 불확실성과 정열을 삭감한다. 또 이런 생각도 든다.

“굳이 이런 노력을 할 필요가 있을까? 도대체 왜 이렇게 힘든 일에 헛된 열정을 쏫아야 하지? 죽으면 모두 끝이고, 헛것인데...”

내 욕구와 욕망을 중시하게 되면 시간이 무감각해 지거나 권태로워 진다. 늘어진 시간을 지내게 되면, 나중에는 세월이 억울하고 원망스럽게 된다. 반대로 삶이 짧띠 짧다. 생각하면 할수록 목표가 분명해 지고, 내가 온전히 전념할 일이 분명해 진다. 죽음을 지속적으로 자각하면,살면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

어떤 때는 불쑥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놀이 공원에서 노는 유치원 아이들을 보면서, 저 아이들이 다 성장했을 때 오늘 내가 만났던 사람들 은행원, 노숙자, 가족, 친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다 죽고 병들었을 것이다. 죽음 앞에선 귀천이 따로 없다. 죽음은 공정하고 평등하다. 

내가 겪는 고통과 남이 겪는 고통이 같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공정하고 공평하며 똑같다. 죽음이라는 공통성 속에서 보면 우리는 공통운명에 묶여 있다. 죽음은 우리주변에 대해 적개심 보다는 인간본성에 대해 보다 심원하고 포용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질병과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뭔가 사랑에 대해 갈망하게 한다. 또 죽음이라는 것으로 대표되는 궁극의 이별과 해체는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고 뭉치게 하는 힘이 있다. 죽음이 끝이라는 것과 그 끝을 넘어 선다는 것에 대한 자각은 극한의 분절과 단절을 용해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다음호에 계속)

구명석 기자  gms7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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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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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기순 2019-09-25 12:46:16

    안다지만 모르고,
    알면서도 외면하고 사는게 죽음인가 봅니다.

    죽음은 공정하고 평등하다. 라는 말이 참으로 심오합니다.
    죽음까지 이르는 과정은 그렇지 않을수있지만 죽음자체는 그렇겠단 생각에 숙연해집니다.

    또한 '막연한' 이란 단어가 뇌리에 박힙니다.
    사전을 살펴보았습니다.
    "갈피를 잡을 수 없게 아득하다."
    "뚜렷하지 못하고 어렴풋하다."
    죽음의 의미를 외면하면 막연한 일에 빠져 살게 된다.
    부정하고 싶어지면서도 수긍되는 제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죽다.
    '소멸하다' 보단 '돌아가다'의 동의어라고 믿고 싶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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