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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하면 떠오르는 가치는 보통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그 박물관이 지니고 있는 것, 즉 어떤 류의 물품들을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궁금증은 박물관을 찾기 전 관람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그곳을 빠져 나오면서는 역사 및 교육적 효용성을 형성한다.
다른 하나는 ‘나들이’란 개념에서 비롯되는 일종의 흥분이다. 전시품들을 보며 얻는 지식과 별개로 여가 및 문화적 의미를 지닌다. 일상과는 다른 세계로의 경험은,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충분한 매력을 발한다.
용인에 위치한 둥지박물관(이사장 황호석)은 굳이 따지자면 후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만화박물관과 생활사박물관, 서예미술관 등 세 개의 테마가 집결된 박물관임에도 그런 여운이 강한 것은, 어찌보면 주변 환경이 너무도 자연친화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박물관을 찾아가는 길은 약간의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이는 천혜의 요지에 자리잡은 곳을 방문한다는 측면에서 약간의 투자라 생각하면 아깝지 않다.
수원방향에서 간다면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양지I·C로 빠져나와 진천 방향 청룡마을로 향해야 한다. 용인 시내를 기준으로는 용인 송담대학을 왼편으로 두고 지나 원삼 쪽으로 20여 분간 달리다 보면 박물관 이정표를 발견할 수 있다.
마을의 ‘청룡교’ 좌측으로 승용차 한 대가 갈 수 있는 길로 접어들어 산 위로 끝까지 올라가면 갈색의 둥근 아치가 들어선 박물관 입구가 나온다.
둥지박물관은 두 동의 건물에 세 종류의 전시관을 갖추고 있으며 30여 개의 객실을 보유한 통나무형 및 콘도형 펜션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수영장과 운동장이 있어 휴가철, 이맘때쯤 가기에 적합하다.

△1.만화박물관
콘크리트색 건물 3층을 차지한 만화박물관은 만화 재래시장이라 불린다. 1954년에 출간된 김성환 만화집 1권 ‘세태만상’부터 제2의 만화 붐을 일으켰던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에 이르기까지 역대 히트 만화가 모여있다.
또 국내 최초의 만화잡지 ‘만화춘추’를 비롯해 안의섭 화백의 ‘두꺼비’, 손의성 화백의 ‘혁 형사’ 등 인기만화 희귀본 등도 눈에 띈다.
이 곳은 40여 년 넘게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만화가 하고명 화백의 손길이 닿은 곳이다. 박기당 문하생 출신으로 1964년 데뷔한 하 화백은 ‘배짱 좋은 소년’, ‘일류 멋쟁이’, ‘갈비전’ 등으로 이름을 날렸었다.
여타 다른 만화박물관과 차별되는 점이 바로 그의 열정과 연관이 있는데, 만화와 잡지, 포스터 등 관련 자료들을 그 혼자 수집해 왔다는 것과 박기당의 ‘천리안’, ‘월광주’ 등 옛 작가들의 육필 원고가 1천500여점이나 된다는 것이다. 비록 공간의 제약상 모두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천하무적 홍길동’, ‘77단의 비밀’ 등 100여 점의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포스터와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대부분의 만화잡지 창간호 및 미국·일본 만화 등도 2천여 권이나 된다.
현재는 ‘하고명 작품 전시관’과 ‘시대별로 본 만화’, ‘원로작가 회고 전’, ‘만화 장르관’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성인만화 전시관’도 있다. 성인만화라 해서 혹 원색적 그림을 기대하면 큰 오산. 다만 ‘밤사쿠라’나 ‘야생마’ 등 은유적(?)인 제목들이 다소 직설적인 오늘날 성 문화와 대비돼 재미를 안긴다.

△2.생활사박물관
세 박물관 중 유일하게 별도의 건물로 돼 있다. 이곳은 개인 수집가 채창운씨에 의해 채워진 곳으로 1·2층을 가득메운 생활소품만 1만여 개가 넘는다는게 박물관 관계자의 설명이다.
1층으로 들어서면 시선을 사로잡는건 단연 전화기. 우리나라 근대의 전화기부터 세계 각국의 다양한 전화기들이 포진하고 있다.
1895년 제작된 스웨덴 벽걸이 전화기, 1910년대 미국 공전식 전화기, 1940년대의 벽괘형 자석식 전화기, 60년대의 체신1호 공전식 전화기 등 각양각색의 전화기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놀라운 사실은 이들 중 90%가 여전히 작동한다는 것.
또 안쪽 한 켠에는 80년대부터 우리나라에 모습을 보인 거대 핸드폰을 비롯해 90년대까지의 핸드폰들이 모여 있으며 자연 생태계를 담은 수석들도 볼 수 있다.
2층은 1963년의 최초의 라면 봉지와 양은 도시락, 사이다 및 술병 등 이제는 빛 바랜 우리의 생활사가 고스란하다.
그 중에서 뭐니뭐니해도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각종 텔레비전이다. 국내 업체가 최초로 제작한 TV는 물론이고 1970년대 ‘현대판 아방궁’으로 불리며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일해재단 영빈관의 브라운관 3개짜리 TV도 전시돼 있다.

△3.서예미술전시관
만화박물관 건물 2층에 들어서 있다. 여기서는 중국에서 더 알려졌다는 취학 진학종 선생의 초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맹자이루’, ‘독락원기’, ‘풍교야박’, ‘자아작고’, ‘어부사’ 등 취학의 글과 이면에 담긴 의미들에서 또 다른 감흥을 맛볼 수 있다.
또 한 달여 전 입주한 작가 의석 김영복씨의 호랑이 그림도 걸려 있는데, 시선을 고정시키고 몸을 움직이면 마치 호랑이가 따라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을 줘 특색을 준다.
본래는 500여 점에 이르는 작품들이 즐비했는데, 최근 그림 강좌 및 체험 프로그램의 공간으로도 활용하고 있어 전시작을 대폭 줄였다. 문의 333-6789.
△인터뷰/황호석 이사장
“박물관이기는 하지만 딱딱한 관념은 없애려 했습니다. 가족이나 연인들의 나들이 코스로, 또 일반 단체들의 MT 장소로 활용토록 해 그저 우리가 가진 소소한 것들을 보여주려 합니다.”
황호석(61) 이사장은 둥지박물관의 가치에 대해 그렇게 평가했다. ‘박물관’이란 개념이 지닌 고유성도 중요하지만 이를 넘어 공간 활용의 확장을 꾀하고 있다. 박물관 전체를 일상에서 탈피하는 안식처로 보는 셈이다.
“물 좋고, 공기 맑고, 취사시설 뿐 아니라 잠자리까지 있고, 나무와 꽃 등 자연이 있습니다. 여기에 만화와 서예미술 그리고 역사적인 생활소품까지 보고 갈 수 있으니 얼마나 안락합니까.”
박물관은 당초 1998년 서예미술관으로 문을 열었다. 그러다 1999년 만화박물관이 들어왔고 2001년에는 생활사박물관을 갖추게 되었다. 각 ‘관’들이 지닌 소장품의 주인은 따로 있지만 실질적인 운영을 맡은 황 이사장의 책임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관변 단체가 개입한 박물관도 꾸려나가기 어려운 현실에서 혼자 힘으로 일궈낸 사립박물관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을 터. 하지만 그는 묵묵히 소신을 펼치고 있다.
“돈 벌려면 애초에 출발도 안했습니다. 사업을 하며 미술 쪽, 특히 서예나 한국화에 관심이 많아 수집했던 것들이 꽤 많았는데 어느날인가 혼자만 보기가 아깝더라구요. 그래서 시작했죠.”
다행히 지난해부터는 용인시의 지원을 받을 수 있어 좀 수월해졌다는 황 이사장. 그는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꿈을 찾아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뽀빠이 이상용씨를 명예회장으로 모셨습니다. 위기에 처할 때면 언제건 달려와 해결해주는 뽀빠이. 둥지박물관이 그 이미지를 닮아 관람객들에게 희망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또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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