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예총 회장 이 보 영

“함께 해서 즐거웠지만 아쉬움이 크다. 내가 표현하고자 한 것을 충분히 펼치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음악적 행보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MBC 예능프로그램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나가수)’에서 1라운드만에 탈락한 조규찬의 안타까운 소감이다.

시청자들 역시 홈페이지를 통해 “화려한 퍼포먼스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짙어 감성적 보컬리스트들이 밀려나는 분위기가 계속돼 아쉽다”, “음악을 보는 기준이 편중돼 있어 가수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 같다”는 등의 글을 올렸다.

이번 조규찬의 스토리는 조규찬 개인만의 일이거나 문제제기에 나선 시청자 또는 ‘나가수’만의 일이 아니다. 요즘 일고 있는 경연프로그램의 출연자와 제작진, 그리고 시청자 모두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할 사회적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슈펴스타K, 위대한 탄생,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 TOP밴드, K-POP스타(예정) 까지, 지금 대한민국은 온통 오디션프로그램으로 시끄럽다.

일반인의 가수 등용문으로 시작된 오디션프로그램은 이제 기존 스타들까지 가세하고 있을 정도로 TV프로그램의 대세가 되었다. 여기에 장르를 확장시켜 피겨스케이팅(키스앤크라이), 스포츠댄스(댄싱위드더스타). 연기(기적의 오디션), 다이어트(서바이벌 빅토리), 아나운서 선발(우리들의일밤-신입사원) 등 서바이벌(생존) 또는 경연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으면 얘기가 되지 않고 관심의 대상도 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처럼 요즘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의 유행은 치열한 경쟁과 일등 지상주의에 사로잡혀 사는 우리사회의 우울한 모습을 심화 고착화 시키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당장 화두가 된 ‘나가수’를 보자. 내로라하는 가수들까지도 서바이벌 경연에 뛰어들어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을 펼치고 있다. 호소력있는 몸짓과 노래실력에 진한 눈물까지 곁들인 임재범은 가수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반면, 자타가 공인하는 가창력의 소유자인 김건모는 ‘예능인줄 알고 장난기 가득’하게 임했다가 조기 탈락의 낭패를 겪고 가수로서 큰 내상을 입었다. 지난 주말 최단기 탈락의 불명예를 안은 조규찬의 씁쓸함은 보는 이까지도 안타깝게 했다. “표현하고자 한 것을 충분히 펼치지 못했다…”라는 그의 말은 서바이벌의 간악함을 뒤늦게 간파한 어리석은 후회같이 느껴졌다.

서바이벌이라는 형식으로 진행되다보니 좋은 의도는 다 축소되거나 뭍혀 버리고 등수밖에 기억 안 나는 현실이 된 것이다. 객석의 관객이나 시청자 역시 음악이나 출연진의 재능을 감상하기 보다는 누가 일등일지 누가 탈락자일지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이 같은 상황은 음악적으로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청중의 선택을 받기 위해 가수는 고음 승부에 매달려야 하고 강렬한 비트의 음악을 선호하며, 슈퍼세션을 동반하려고 애를 쓴다. 여기에 화려한 퍼포먼스와 강렬한 쇼맨십까지 곁들이는 게 일등 가수들의 공식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진정한 가창력을 엿볼 수 있는 발라드나 느린 템포 긴 호흡의 곡들은 선곡대상에서 점차 밀려나는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KBS '불후의 명곡'은 그나마 착한 포맷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승자에게 트로피를 수여하고 박수를 보내는 것으로 경연을 마무리 하니까 말이다.
탈락과 경쟁이 주가 되는 지금의 모습은 대단히 위험한 현상이다. 이 문제에 대한 개선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점점 강렬한 생존경쟁의 분위기가 만들어질 게 분명하다.

승자독식, 장르적 편향, 생존경쟁 등 불편한 단어들로 상징되는 예능프로그램의 현 상황. 이런 현상들이 ‘한국식○○’으로 명명되는 건 아닌지, 그로인해 한국적인 것은 부정적인 것이란 이미지가 새롭게 부각되고 고착화 되는 것은 아닌지 경계해야 한다.

우리사회가 진정 선진화 되려면 포기하는 사람보다 도전하는 사람이 아름다우며, 결과보다는 과정이 빛나야 한다는 사실을 전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특히 예능프로그램의 주 시청자인 청소년들에게 일등이 아니어도, 설령 탈락했을지라도 아름답고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전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최선을 다한 사람은 그 자체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인식전환이 오늘날 살인적인 입시만능주의와 사교육경쟁, 그에 따른 삶의 질 저하 등 각종 사회문제를 풀어가는 단초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손우정  swj505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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