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장애인부모회 유향금 회장

강단에서 장애인가족에 대한 강의를 할 때마다 나는 앨리자베스 퀴블로 로스의 「죽음의 5단계이론」을 적용한 「장애인가족의 반응5단계이론」에 대해서 강의를 하곤 했다.
가족 구성원 중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 생겨나면 그 가족은 그것을 받아들이기까지의 반응단계를 겪게 된다.
퀴블로 로스의 죽음의 5단계이론을 보면 부정-분노-타협-절망-수용의 단계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반드시 이 단계를 순차적으로 겪게 되는 것은 아니며, 또한 같은 단계를 반복적으로 겪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1단계는 부정의 단계이다. 두 돌이 되도록 엄마 소리조차 하지 못하는 아이를 업고 대학병원 진료실에서 초조하게 검사결과를 기다리던 나에게 의사선생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은 자폐성장애라는 진단결과였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평생을 장애아의 엄마로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에 눈물만 하염없이 흘렀다. 설마 설마 하면서 병원을 찾았지만 내 아들이 장애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3개월이라는 예약시간을 기다려 우리나라에서 최고라고 손꼽히는 병원을 다시 찾았다.
뇌파검사를 위해서는 그냥 잠을 자면서 검사를 받아야 했는데 그것이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밤새 아이를 재우지 않으려고 애를 쓴 채 병원으로 향했는데 자동차 안에서 잠들려는 아이를 흔들어 깨우면서 병원에 도착했지만 어수선한 병원분위기 탓인지 아이의 눈은 오히려 초롱초롱했다. 오늘 검사를 실패하면 또다시 3개월 후에야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잔디밭에 누워서 아이를 재워보려고 해도 업고 병원 마당을 서성거려 봐도 소용이 없었다.
다시 차에 태워 병원 주변을 몇 바퀴 돌자 아이는 겨우 잠이 들었고 무사히 검사를 마칠 수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검사결과는 역시 자폐성장애라는 진단이었다. 그 후에도 주변사람들의 소개로 용하다는 한약방에서 비싼 환약도 먹여봤으며, 기도로 불치병을 치유한다는 분께 안수기도를 받아보기도 했다. 이러한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변화가 없었다.
2단계 반응단계는 분노의 단계이다.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러한 시련을 겪어야 하는지 절대자인 누군가에 대해 분노의 마음이 생긴다. 이 아이로 인해 내 인생이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는 것만 같아 남편도 원망스럽고 나를 힘들게 했던 가족들이 모두 원망스러웠다.
3단계 반응단계는 타협의 단계이다. 의료적인 방법은 없고 교육만이 아이의 장애 정도를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해서 특수교육울 실시하기로 하고 계획을 세웠다. 특수조기교실에서 교육을 2년 정도 받고 나서 일반유치원을 2년 정도 다니면 일반학교를 진학할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에 4년만 참고 열심히 해보자고 다짐하고 교육을 시작하였다. 교육을 시작한 지 2개월 만에 엄마 소리조차 못했던 아이는 엄마, 아빠라는 단어를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우리의 기대는 현실화되는 것만 같았다.
4단계 반응단계는 절망의 단계이다. 교육을 시작한 초반에는 아이가 빠르게 변화하는 것처럼 보이더니 일정 시간이 지나자 정체기가 왔다. 우리는 또다시 절망을 느꼈다. 한번 장애라는 진단을 받으면 평생 멍에를 벗을 수 없는 것 같아 더욱 큰 절망감에 몸부림쳤다.
마지막 5단계 반응단계는 수용의 단계이다. 내 아이가 비록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우리 가족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너무나 부족한 아이지만 장애자녀로 인해 또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주셨고 작은 것에 감사할 수 있는 겸손함도 배우게 되었다. 23살이 되었지만 아직도 3-4세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간직한 아이에게서 나는 오늘도 사랑을 배우며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단지 하나의 소망이 있다면 내가 늙어서 더 이상 내 아들을 돌볼 수 없을 때, 혹은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이사회에 내 아들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복지사회가 실현되기를 소망한다. 그러기 위해서 (사)한국장애인부모회 용인시지부장으로서 복지사회, 복지용인구현을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바쁜 걸음을 재촉해본다.

구명석 기자  gms7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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